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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후기

Parannoul 2025. 2. 17. 03:15

0. 리믹스한 이유

12월 말에 테스트 프레싱을 받았는데...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서 틀었는데.... 진짜 구리더군요.... 베이스가 다 잡아먹고 보컬 밸런스도 안 맞고 자잘한 것들은 들리지도 않고... 사실 저렇게 된 이유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동일한 음량에서 다른 것들보다 크게 들리는 것이 노이즈락으로서나 듣는 입장으로서나 더 좋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음량은 청자가 알아서 조절 가능하고... 요즘엔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알아서 컴프레싱돼서 나오기 때문에... 시끄러움 차력쇼에 목매달아 기껏 공들인 요소들을 버리고 조용하게 들을 선택 유무를 없애버리는 게 제작자로서는 구시대 라우드니스 워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를 줄이고 전체적으로 디테일과 다이나믹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꿨습니다... 겸사겸사 맘에 안 들었던 부분들도 조금 고쳤습니다... 과거의 뭉개진 느낌을 좋아하신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언젠가 적응될 거라 믿습니다... 죄송합니다... 더 나은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0.25. 앨범 커버

 

요게 원본입니다. GIMP로 이리저리 놀다가 마구 빨개지는 게 맘에 들었습니다. 외국 릴스를 보다가 '어렸을 때 보이는 세상의 색채와 어른이 되어서의 색채가 다르다'는 뉘앙스의 릴스를 봤는데 딱 그게 떠올랐습니다. 'How we saw the world as a kid'라 치면 나올 겁니다.

 

 

0.5. 컨셉

 

2020년에 만든 컨셉 초안의 일부입니다. 이후로 만든 게 2집이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급조된 앨범이고, 사운드나 앨범 흐름 구상 자체는 4집이 먼저였어요. 단지 제가 미드웨스트 이모를 물리적으로 구현 못해서 미뤄졌다는... (그리고 정작 4집에는 미드웨스트 이모 요소가 하나도 없다는...)

반면 앨범 주제라던가, 황금빛 강과 고통없이를 제외한 전체적인 가사는 앨범을 내기 1주 전에서야 확정했습니다. 뭔가 제게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시기라 마음이 휙휙 바뀌더라고요. 그중에서도 항상 간직하고 있던 마음들을 골라 쇽쇽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앨범 제목은 오래전부터 4집에 써야지 하고 메모했었습니다. Sky Hundred는 Ground-Zero의 반대말에서 따왔습니다.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제 심정을 콕콕 표현해주는 말이라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백의 눈동자가 주는 부담감이라던가 '너 같은 인디 나부랭이는 하늘 아래 수백이나 널렸는데 너가 운 좋게 뜬 거야' 같은 가면 증후군이라던가 '분명 수백의 다른 하늘에서 살아있을 거야' 라던가...

 

 

 

 

1. 주마등

이 앨범의 곡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곡입니다. 고1 때 같은 학교 학생이 삶을 마감했는데, 그즈음 데모가 만들어졌고, 가사는 재작업하면서 그때의 생각들을 회상하며 만들었습니다.

Arcade Fire의 곡들을 참 좋아하는데, 그 ㅈㄴ달려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 황금빛 강

그냥 이것저것 느낀 감정들이 섞였습니다. 그 중 하나로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치매인데, 그런 정신적 죽음이 다가올 때의 저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에요. 중간의 "내일쯤에~" 부분은 제가 좋아하던 분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올린 게시글을 자동 번역했더니 나온 것입니다. 나중에 제대로 보니 원문의 뜻은 전혀 달랐지만, 너무나 인상 깊어서 인용했습니다.

 

 

3. 아마 어딘가에

예전에도 밝혔듯이 라이브나 음악 활동에 현타가 와서 만든 곡입니다. Seam의 Bunch를 듣고 너무나 감명받아서 만들었는데, 사실 이 곡엔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만들려던 두 번째 파트가 있었는데, 다 만들고 '아 이제 신보나 들어야지' 하고 Maruja의 EP를 틀었는데 'Resisting Resistance'와 너무나 똑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폐기해 지금의 곡이 되었습니다.

가사 중 Autopilot은 Seam의 동명의 곡을 인용했습니다. 그 곡의 가사를 봤는데 눈물이 나올락 말락 하더군요... (결국 안 나옴)

 

 

4. 고통없이

본래 동반자살하다 실패해 세상에 남겨진 사람 시점의 곡이었는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다른 특정 시점의 제가 화자인 걸로 바꿨습니다. 저도 Hum 느낌의 멜랑꼴리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빼곤 할 말이 없네요.

 

 

5. 암전고백

과거의 저가 지금의 저를 '내가 니 야망이 얼마나 큰지 아는데 벌써부터 이 지랄인거니' 하고 비웃는 노래이자 그 상상만으로 비참해져서 또 우울 스파이럴을 돌리는 제 자신에 대한 곡입니다. 인트로는 합주 때, 아웃트로는 Digital Dawn 공연 때 클립들을 사용했습니다. 가사 중 일부는 괭이갈매기 울적에를 참고했습니다. 시간나면 꼭 해보세요.

후반부 개지랄 파트는 Sweet Trip을 참고했습니다. 초기 버전은 Evoke Me의 11분부터 나오는 파트가 아웃트로였는데, 레이블 사장이자 제 친구인 Matt이 너무 극과 극으로 나뉜다고 피드백을 해주셔서 지금의 에라 모르겠다 대환장쇼로 바꿨습니다.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이라 호불호가 갈릴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별 탈 없이 넘어간 듯 하네요.

 

 

 

6. 일깨우다

이것도 Matt한테 평생 고마워해도 모자랄 노래입니다. 처음엔 대곡을 만들고 싶어서 하드디스크에 짱박혀있던 걸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고 혼자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Matt이 제게 이 노래에 대해 장문의 피드백을 남겼습니다. 혹평까진 아니지만 매우 실망한...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꼬박 2~3일을 밤새서 수정했고, 그게 지금의 곡이 되었습니다. (이전 버전은 신도시 라이브 영상 초반부 때 감상 가능) 안 그래도 앨범의 주춧돌이 되는 곡인데, 수정하지 않았다면 앨범 청취 만족도가 훨씬 낮지 않았을까 싶네요.

신스나 전체적인 진행은 TBLA를, 후반부는 baan을 참고했습니다. 중후반부부터 나오는 샘플은 어떤 옛날 드라마에서 따왔습니다. 곡은 흰천장 데모와 비슷한 시기에 쓰였는데, 자세히 들으시면 비슷한 것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가사 의미는 걍 가사에 대놓고 나와있어서... '슬픔 - 분노 - 반항 - 절망 - 수용 & 깨달음'의 단계를 건넙니다.

 

 

7. ...그러나 더 이상 얘기하질 않네

원래 8번 트랙과 합칠 예정이었으나 심리적으로 쉬는 구간이 필요하다 생각해 따로 나눴습니다. 드럼 요소들은 Black Country, New Road를 참고했습니다.

 

 

8. 시계

이것도 주마등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엔 Arcade Fire에 미쳐있던 터라 곡들이 그와 비슷하게 나왔는데, 요것도 포스트락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 아련한 느낌을 노렸습니다. 후반부는 이전 곡과 마찬가지로 Snow Globes를 참고했습니다. 제가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파트이기도 해요.

바뀐 인트로는... 음... 저는 지금 버전이 더 좋아서... 이전 버전이 좋았던 분께는 죄송합니다.

 

 

9. 후회하는 의미

1집 이후로 첫 '의미' 시리즈입니다. 샘플에는 어릴 적 영어학원에 다니는 제 목소리가 흐르네요. 후회하는 의미 따윈 없습니다.

 

 

10. 환상

234집 세트의 막을 내리는 곡이라 생각해, 인트로에 아름다운 세상과 같은 Beep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원래부터 있던 거지만 3:53 부터는 북극성의 신스가 흐릅니다.

납득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은 실리카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코러스 때 들리는 셰이커 소리라던지 저답지 않게 팝 같은 보컬 멜로디라던지? 제가 만든 노래 중에서 진행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자 앨범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3번 트랙이 라이브에 대한 곡이었다면, 이 곡은 제 파란노을로서의 존재에 대한 곡입니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는 건지 내 환상을 듣는 건지, 내가 좋아했던 과거의 사람들도 그저 환상이 뒤따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지... 환상으로 빗어낸 내 가면이 벗겨지면 음악인생은 ㅅㅂ 어떻게 되는 건지... 점점 깊어지다 답을 찾지 못한 채 대가리를 비우고 노래로 완성했습니다. 어쩌면 아웃트로가 제 답일지도 모르겠네요.

 

 

11. 그 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유튜브에 스페이스 공감을 치시면 제가 세션분들과 함께 'Sky Hundred'라는 곡을 연주한 게 나옵니다. 원래 2집의 5번 곡 같이 쉬는 곡 정도로 집어넣으려 했는데, 그렇다간 앨범이 너무 루즈해져 3집 꼴이 날까봐 빼기로 했습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음원보다 라이브가 훨씬 좋아서...

 

 

 

 

12.

이제 진짜 더 할 말이 없네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뉴 파란노을과 뉴 음악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