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jellybones.net/interviews/parannoul
1. 첫 앨범들에는 가상악기를 사용하셨죠. 가상악기의 사용이 마치 거짓이라는 듯 이에 대해 사과하신 바가 있는데, 저는 가상악기도 실제 악기만큼 충분히 고유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상악기 사용 프로세스에 대해 궁금한데, 기타, 베이스, 드럼 사운드는 어떤 VST/VSTi로 구현하셨나요? 혹시 가상악기 사운드를 보다 생동감있게 표현하시는 비법이 있나요?
기타는 Evolution Strawberry를, 드럼은 Addictive Drums 2를 사용합니다. 슈게이즈 사운드를 가상악기로 잘 표현하려 한다기보다는, 가상악기 사운드가 덜 티나는 장르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 관심이 슈게이즈로 기울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는 포스트락 장르를 했었는데, 조용한 부분은 가상악기 티가 나고 터지는 부분은 티가 덜 나기 때문에 그 터지는 부분만 곡에 넣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자연스럽게 장르를 바꾸게 된 거에요.
2. 가장 최근 발매하신 After the Magic 은 라이브 악기를 사용하시기도 했고 사운드 디자인적인 면에서 한층 새로워졌다고 느꼈습니다. 이아직, 아시안 글로우와 함께 작업하면서 플러스된 요소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이번 앨범을 통해 프로듀싱과 믹싱에 대해 배우신 점이 있나요?
당연히 엄청 많은 걸 배웠죠. 저는 튜토리얼을 보지 않고 무작정 시작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 동안 보통의 프로듀싱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조언과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3. After the Magic 발매 당시 “this album is not what you expected, but what I always wanted” 라고 하셨는데요. ‘이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도 하셨고요. 무슨 뜻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적으로는, 예전에 Smashing Pumpkins의 Tonight, Tonight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슈게이즈에 오케스트라를 섞은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Takagi Masakatsu와 Sigur Ros 그리고 Sweet Trip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한 앨범에 집어넣고 싶었습니다. 결국 슈게이즈보다는 전자음이 주가 된 인디 락 앨범이 되어버려서, 2집의 로파이한 사운드와 슈게이즈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많이 낯설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테마적으로는, 제가 어릴 때 엄청 감명깊게 꾼 꿈을 바탕으로 동화적 느낌이 나는 컨셉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구상한 이야기의 결말은 그리 좋지 않지만, 일부러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줘서 2집의 자기파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어요.
4. 해외 밴드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으시나요? 그렇다면 주로 어떤 밴드들을 들으시나요? Ride, Ovlov, The Smashing Pumpkins 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저희는 사운드 외 가사에도 접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흰천장”을 들으면서 카 시트 헤드레스트의 “The Ballad of the Costa Concordia” 중 “yellow ceiling light that makes me feel like I’m dying” (노란 천장조명을 보고 있자면 죽을 것 같아) 라는 가사를 떠올렸습니다. 혹시 영미권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읽고 영감을 얻으시기도 하나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Car Seat Headrest의 가사는 Twin Fantasy만 보았었고, 딱히 다른 음악의 가사에 영감을 얻지는 않고 일기장에서 쓸 만한 것들을 모아 정제할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사를 정말 못 쓴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음악적으로는 영향을 엄청 받고 있어요. 예를 들어 깨지는 드럼 소리는 Nouns와 Boris와 Heccra에서, 10분 이상의 길이를 가진 긴 곡들은 Car Seat Headrest나 Weatherday에서처럼... 최근에는 12 Rods와 Seam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5. 파란노을의 음악은 “5세대 이모(emo)"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 장르는 Brave Little Abacus 의 장르 구분을 넘나드는 맥시멀리즘으로부터 출발해 Heccra 와 저희가 최초로 인터뷰했던 Weatherday, 그리고 함께 작업하셨던 아시안 글로우, sonhos tomam conta 까지도 연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밴드들을 동일한 장르, 혹은 하나의 연대기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일 그렇다면 본인도 이 장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Fifth Wave Emo를 미는 사람들을 보면 대충 어떤 맥락으로 그렇게 엮는지 이해는 갑니다만 저는 그 현재까지 웨이브에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Fifth wave emo isn't real!!!!'처럼 강경한 입장은 아니고, 그저 어렴풋이 존재는 하지만 아직은 구별이 갈 만큼 구체적으로 차별적이지 않고 한계점이 명확하다고 봅니다.
기존의 큰 장르에 다른 장르를 조금씩 섞는 행동은 가장 기본적인 실험이라고 생각하며 저 또한 계속 장르의 경계를 넓히려고 시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실험들을 분류하기 위해 microgenre를 만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작은 역사책을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그러나 때로는 저와 Jane Remover를 Hyper-Rock이라는 장르로 묶으려는 것이나 틱톡으로부터 범람하는 OO-core같이 무분별하고 effortless한 시도들도 많이 보입니다. 이러한 라벨링은 창작자에게는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면서도 장르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때문에 좋을 수도 있지만, 시간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들도 분명 많을 테지요. 5년 후를 상상하면 과연 5세대 이모를 기억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분명 기존의 이모와는 다른 기류가 보이는 건 분명하고, 더욱 좋은 음반들과 더욱 명확한 특징들이 보이면 5세대 이모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5세대 이모를 정의할 수 있을 때는 그 세대가 끝나갈 즈음이라 생각해요.
6. 서구에서 알아주는 한국 문화는 보통 k-pop, 특히 아이돌 음악이죠. 저희도 k-pop을 즐겨 듣긴 하지만 (뉴진스와 이달의 소녀를 특히 좋아합니다) 한국 청년들이 듣는 음악은 k-pop 외에도 훨씬 다양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 청년층에서도 고독과 우울감이 심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파란노을의 음악은 부유하고 화려한 ‘강남 인생'과는 거리가 있는 이 청년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파란노을, 그리고 다른 한국 인디 아티스트들은 k-pop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악 업계, 그리고 주류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요즘 한국 청년들이 놓인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k-pop 음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편입니다. 비록 상업적이라 할지라도 비주얼이라던가 엔터테인먼트로서 바라보면 괜찮은 컨텐츠이고, 음악 또한 몇 가지는 즐겨듣고 있습니다. 제가 음악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답변을 드리기 어렵지만, 주류 문화가 이때까지의 모습보다 더 신선하고 차별화된 무언가를 원한다면 점점 언더그라운드를 잡아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뉴진스가 이러한 차별화된 실험과 그걸 이용한 마케팅 덕분에 평론과 대중한테 모두 호평을 받았으면, 그 성공을 목격한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죠. 그러면 언젠간 언더그라운드의 마이너함과 실험성 또한 마케팅으로 써먹을 때가 올 거고, 거기에 가담하는 인디 프로듀서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제가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나봐요.
7.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의 앨범 커버로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의 장면을 오마주하셨죠. 아시아 영화계의 걸작이자 현대 사회에 환멸을 느끼는 청년들을 대변하는 영화라는 면에서 흥미로운 선택인 것 같습니다. 파란노을에게 이 영화는 어떠한 개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다른 미디어 (영화, 만화, 소설, 드라마 등) 중 비슷한 감성이나 분위기를 표현하는 작품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머리카락뭉치'라는 아티스트를 처음 듣고 앨범 커버에 쓰인 것 덕분에 그 때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대책없는 우울함과 같은 동양적 청소년기를 겪고 있다는 동질감에 매료되었습니다. 학생 때 그 영화를 알게된 건 고작 1년 뿐이지만, 지난 학교생활에서 얻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큰 우울로 대변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보면 감흥이 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제게는 아주 중요한 영화에요.
저는 평소에도 영화나 책 같은 취미는 없었지만, 지난 2년간은 음악만 만들면서 다른 미디어를 아예 보지 않은 것 같아요. 또한 나이가 들어서인지 제 삶도 우울한데 미디어까지도 우울한 건 굳이 찾아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 개 기억이 남는 걸 꼽는다면 '僕たちがやりました' 나 '惡の華', 'アオイホノオ' 등을 추천합니다. 우울하지 않은 것들론 2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의 제목을 짓는데 영감을 받은 '星屑ニーナ', 그리고 정말 재밌게 봤던 'スピリットサークル'과 '湯神くんには友達がいない'이 있습니다.
8. 기타 디스토션을 사용한 음악은 가요계에서도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솔로 1집도 파란노을의 스타일과 비슷하게 팝 느낌이 살짝 나는 멜로딕하고 헤비한 얼터너티브 음악이었는데요. 1998년 당시 국내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했죠. 지금 한국 인디 음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오히려 더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외 음악 커뮤니티 (rateyourmusic), 평론가 (Anthony Fantano), 매거진 (Pitchfork) 등에서 얻은 호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디 음악이 한국에서 다시 주류의 영역으로 넘어갈 날이 있을까요?
제 음악을 좋게 들어주셨다는 뜻이니 저야 정말 감사하죠. 분명 저 말고도 다른 훌륭한 인디 아티스트들이 많기에 그 분들도 주목 받았으면 합니다.
현재 Silica Gel / Wave to Earth / The Rose / DAY6 등 여러 밴드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를 보면 인디 음악은 몰라도 밴드 음악이 (한국에서) 주류로 올라올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대중들이 점점 음악을 (멜론)차트에 있는 것만 듣기보다는 직접 찾아서 듣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때 위에서 언급했던 k-pop적인 팬덤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밴드의 낭만적이면서도 힙스터적인 요소들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그것에 매료되어 밴드 음악을 더욱 열심히 듣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론 한국에 밴드가 흔치 않은 이유로는 과다한 학구열(education fever)과 약한 부활동 (weak club activities) 그리고 문화탄압의 역사로 뽑는데, 비록 당장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학생 때 밴드 음악을 듣고 자라 밴드부에 들어가거나 악기를 치는 등 꿈을 키우면 후세에 더 많은 밴드들이 탄생해 다시 주류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9.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한국 인디 씬에서 많은 조명을 받으셨는데, 이 관심을 달갑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내며 ‘행동하는 찐따'들을 이끌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건가요? 한국 인디 음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내주시는 관심들이 때론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음악은 계속 만들고 싶지만, 저는 항상 남을 위한 음악이 아닌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도한 행동하는 찐따는 사회에 대한 반란같은 대단한 게 아니라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작업물로 승화시켜 좀 더 이러한 부류의 음악이 많아졌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메세지는 2집에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모든 것들이 일차원적으로 2집같지는 않을 거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변화하기에 제 음악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겁니다.
10. 지금 주목해야 할 한국 인디 밴드는 누구인가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작년 3월에 낸 라이브 앨범 After the Night에서 기타를 치신 Yo님께서 올해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 (Hopetrain to Universe)'라는 앨범을 내셨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khc', '오미일곱', '김반월키', 'HIMINN', '미역수염', '우륵과 풍각쟁이' 등 여러 밴드들이 재밌는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11. 파란노을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북미 투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지금 당장 계획은 4집을 포함한 여러 작업물들을 끝내는 거고, 머릿속으로는 6집까지 계획이 잡혀있지만 이게 과연 실현될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지금 만들고 있는 Brave Little Abacus 영향을 받은 4집이 원래 3집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이 미뤄진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3집에서 Brave Little Abacus를 기대하다가 실망하기도 했죠. 이렇듯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북미 투어는 언젠간 하고싶지만 지금은 정신적으로나 실력적으로나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12. 파란노을 음악을 라이브로 공연하는 데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요?
아마도 공연장에 따라 음향이 완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음원에서 제가 구현하고자 했던 '너무 시끄러워서 스피커를 부수게 되면서 들리는 깨진 사운드에서 느끼는 대리만족적 카타르시스'가 라이브에서는 잘 표현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현재는 멀티트랙을 틀고 공연을 하는데요, 언젠가는 사람을 더 불러서 멀티트랙 없이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13.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의 가사와 앨범 소개글에서 꽤나 처절하고 어두운 감정들을 느꼈고, 앨범 작업 당시 많이 힘들어하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집 발매 이후 파란노을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After the Magic 의 비교적으로 희망적인 가사에 비추어 보면 파란노을은 이제 꽤 다른 분위기의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요?
더욱 긍정적으로 변한 건 사실입니다만, 삶에 대한 태도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어도 제 성격이 앞길을 막아서 결국엔 쓸모가 없는 것 같아요. 때로는 제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차지했다면 더욱 잘 써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After the Magic의 가사도 2집보다는 비교적 희망차게 쓴 거지, 제가 의도한 결말은 결국엔 꿈 속의 화자가 현실로 돌아오면서 사라진다는 엔딩이었어요. 전 트랙 'Blossom'은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인 회광반조(Surge)라 볼 수도 있죠. 이렇듯 제 성격을 바꿀만한 드라마틱한 요소가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 음악은 늘 어딘가에 어두움을 띄고 있을 겁니다.
14. 향수(nostalgia)라는 감정이 음악에서 이토록 강력한 작용을 하는 건 왜일까요?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청각으로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한정되어있기에 제일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고, 여러 생각들 중 조금이라도 과거와 연관이 있으면 향수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와 별개로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을 영화처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bgm처럼 상황에 맞게 노래를 선정하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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