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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shcan/Gibberish

짧은 얘기

by Parannoul 2024. 9. 6.

For non-korean speakers:
I'm no longer performing live, My feelings about live performance and music itself are in 'Maybe Somewhere' and 'Fantasy'. Please understand my decision. Thank you, you're welcome.



진짜 별거 아닌 소식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라이브를 그만두려 합니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총 5번의 라이브를 했네요. 디지털던, 단독공연, 게르다 오프닝, 슬로다이브 오프닝, 그리고 펜타포트. 여러 곳에서 제 노래실력에 대한 소소한 논란이 있었다는데, 사실 저는 좆도 신경 안 썼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런 건 제게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어차피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할 거거든요. 그러나 저를 즐겨주신 관객들에겐 정말 죄송한 얘기겠지만, 사람들이 제게 열광하건 욕을 하건, 제가 재미가 없으면 그 행위를 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음악을 만든 이유는 재미있어서였습니다. 지금도 음악적으로 앰비언트든 힙합이든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것도 재밌어서고요, 46분짜리 곡을 연주하거나 공연 도중에 신보를 공개하거나 그런 건 처음 생각할 때는 별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지만 라이브를 할 때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돈만 보고 꾹 참는다기엔 저는 공연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고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음악에서만큼은 순전히 재미와 흥미가 향하는 곳으로 움직였지만, 라이브에 관련된 것만은 제 의지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미 첫 한두 번에서 마음속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라고 자기최면을 하며 즐거워질 거라고 믿었었나봐요.

그렇기에 이번 펜타포트 때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뜨거운 열기에 발작이 도지면서도 저를 위해 노래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공연 중반부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제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관객들이 제 이름을 불러도 슬프기만 했습니다. 대부분 아티스트들은 무대가 끝나면 허무함 또는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의심으로 치부하던 제 본심을 인정하자 더는 공연을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라이브를 할 성격이 아니라는 걸요. 모두의 기대에 힘입어 그리고 주변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해 엉겁결에 수락을 한 것이지요. 물론 그 결정들이 본인의 의지였던 만큼, 지금까지 한 라이브에는 한 치의 후회도 없습니다. 후회하는 의미가 존재하겠어요. 단독공연의 엔들리스나잇은 음악을 하면서 저를 물리적으로 울리게 만든 유일한 경험이고, 슬로다이브 오프닝이나 펜타포트 라이브 수락 또한 지금 와서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찐따스러움을 한 번에 담아낸 공연은 다시는 못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 공연을 항상 마지막으로 생각했고, 제가 지금까지 한 공연 중 가장 좋았기에 다행히도 라이브 잠정 중단에 후회는 없습니다. 공연 도중 발매한 4집에도 이러한 저의 생각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Maybe Somewhere는 저의 라이브와 음악 전체에 대한 감정들을 적어낸 노래입니다. Fantasy는 이런 결말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만든 노래입니다. 신비주의를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얼굴을 가리는 게 멋대로 전략화로 치부되는 게 싫었습니다. 알려지길 싫어하는 어느 사람의 작업물들이 백업되어 모두에게 멋대로 낭만화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숨어 지냈던 저를 인정하면서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얼굴을 내밀어, 모두에게 비쳤던 수백의 저를 버리고 머리를 좆밥같이 기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사라졌습니다. 엔딩으로 어울리지 않나요?

부디 저의 결정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소한 것을 쫓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영영 퇴색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음악은 계속 할 생각이고, 제가 워낙 마음이 휙휙 바뀌는 성격이라 10년 후에 다시 어쩌구저쩌구 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계획이란 건 계획되로 되지 않아야 완성되는 법이잖아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되도록이면 강박에 묶이지 않은 채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네요. 제 음악인생에 챕터가 있다면 지금까지 1~4집은 극극극초반인 "parannoul shoegaze era"일 뿐입니다. 10년 후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저, 2020년~2024년 20대 초반의 저를 회상하게 된다면... 그때는 모두에게 만만하고 찐따같았던, 우당탕탕 천방지축 오합지졸인, 항상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른 더벅머리 파란노을의 이미지로 남고 싶습니다. 잘 놀다 갑니다.
 
 

 

ps. 그만 둔 이유엔 대인기피니 공황이니 정신병이니 여러 요소들도 있지만 흥미를 잃어서가 제일 컸고 너무 사적인 것들은 굳이 얘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언젠가 페이브먼트식 기타팝 밴드를 하고 싶다고 블로그에 적었었는데, 공연을 다시 하게 된다면 다른 이름 다른 밴드로 작은 곳에서 공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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